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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정맥류 경화치료의 역사 — 주사 한 방으로 혈관을 없앤다는 아이디어는 어디서 왔을까?

다리에 구불구불하게 튀어나온 혈관, 하지정맥류. 많은 분들이 치료 방법으로 '경화치료(硬化治療, Sclerotherapy)' 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서동주 대표원장·2026-03-07

다리에 구불구불하게 튀어나온 혈관, 하지정맥류. 많은 분들이 치료 방법으로 **'경화치료(硬化治療, Sclerotherapy)'**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혈관 안에 약을 주사해서 혈관을 딱딱하게 굳혀버리는 이 치료법은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백 년의 역사와 시행착오 끝에 완성된 놀라운 의학의 산물입니다. 오늘은 경화치료가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원리로 작동하며, 과연 안전한지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경화치료란 무엇인가?

'경화(硬化)'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skleros, 즉 '딱딱하다'는 뜻에서 유래했습니다. 경화치료는 문자 그대로 혈관을 딱딱하게 만들어 없애는 치료로, 문제가 되는 혈관 안에 **경화제(sclerosant)**라고 불리는 특수 약물을 직접 주사하는 방식입니다. 주사를 맞은 혈관은 염증 반응을 일으키고, 수주에 걸쳐 서서히 섬유화(흉터 조직으로 대체)되면서 사라집니다. 수술 없이 바늘 하나로 혈관을 소멸시킨다는 발상 — 이것이 바로 경화치료의 핵심입니다.


경화치료의 탄생 — 17세기 스위스에서 시작된 첫 번째 시도

경화치료의 역사는 무려 16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스위스의 의사 **D. 졸리코퍼(D. Zollikofer)**가 처음으로 정맥 안에 산(酸)을 주사하여 혈전(피떡)을 유도하려는 시도를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물론 지금 기준으로 보면 매우 원시적인 방법이었지만, '혈관 안에 무언가를 넣어서 혈관을 막아버리자'는 아이디어의 씨앗은 이때부터 싹텄습니다.

본격적인 발전은 19세기 중반에 이루어졌습니다. 1853년 프랑스의 **드부(Debout)**와 **카사냐크(Cassaignac)**는 과염화철(perchlorate of iron)을 정맥에 주사해 하지정맥류 치료에 성공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듬해인 1854년에는 **데그랑주(Desgranges)**가 요오드와 타닌(iodine and tannin)을 혼합한 용액을 주사하여 16건의 하지정맥류를 완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러한 연구들은 당시 의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마취도 부실하고 수술 자체가 목숨을 걸어야 했던 시절에 '주사만으로 정맥류를 없앨 수 있다'는 개념은 혁명적이었습니다.


초기의 좌절 — 부작용의 늪에 빠지다

그러나 희망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19세기에 사용된 경화제들은 효과는 있었지만 부작용이 너무 심각했습니다. 피부 괴사, 심한 염증, 전신 독성 등 위험한 합병증이 속출했고, 결국 경화치료는 1894년경에 사실상 포기 상태에 가깝게 내몰렸습니다. 때마침 외과 수술 기법과 마취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정맥을 발거(拔去, stripping)하는 수술 치료가 표준 치료로 자리 잡게 됩니다.

하지만 포기를 몰랐던 일부 의사들은 더 안전한 경화제를 찾는 연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20세기 초 탄산나트륨, 수은 과염소산염, 석탄산(carbolic acid) 등 다양한 물질이 시도되었지만 하나같이 부작용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1차 세계대전과 경화치료의 재부상

전쟁은 역설적으로 의학 발전의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1차 세계대전(1914~1918) 동안 프랑스의 시카르(Sicard) 교수 등은 부상 병사들을 치료하면서 **탄산나트륨(sodium carbonate)**과 이후 **살리실산나트륨(sodium salicylate)**을 경화제로 활용하는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이 시기에 **퀴닌(quinine)**도 경화제로 활용되어 어느 정도 효과를 보였습니다.

1929년 **코플슨(Coppleson)**은 자신의 저서에서 살리실산나트륨이나 퀴닌이 당시 가장 유망한 경화제라고 정리했습니다. 경화치료는 서서히 부활의 기지개를 켜고 있었습니다.


현대 경화치료의 터닝포인트 — STS의 탄생 (1946년)

경화치료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는 **1946년 소듐 테트라데실 설페이트(Sodium Tetradecyl Sulfate, STS)**의 개발입니다. STS는 음이온성 계면활성제(anionic surfactant)로, 세포막의 지질 분자를 공격해 혈관 내벽을 선택적으로 파괴하는 작용을 합니다. 부작용은 이전 경화제들에 비해 훨씬 줄었고, 효과는 뛰어났습니다.

STS는 오늘날에도 Sotradecol, Fibrovein 등의 상품명으로 전 세계에서 널리 사용되는 핵심 경화제입니다. 무려 80년 가까이 사용되고 있는 셈이니, 그 검증된 역사가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피건(Fegan)의 혁신 — 혈전이 아닌 섬유화로 패러다임 전환

1960년대, 아일랜드의 혈관외과의 **조지 피건(George Fegan)**은 경화치료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그는 무려 13,000명 이상의 환자를 경화치료로 치료하면서 이전의 접근법과는 다른 철학을 제시했습니다.

핵심은 '혈전(thrombosis) 형성'이 목표가 아니라 '섬유화(fibrosis)'가 목표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혈전은 재개통(recanalization)될 수 있지만, 섬유화는 혈관을 영구적으로 폐쇄시킵니다. 또한 그는 역류가 발생하는 핵심 지점을 정확히 파악해 치료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치료 후 압박 스타킹 착용을 체계화하여 치료 효과를 극대화했습니다.

피건의 방법론 덕분에 경화치료는 유럽 대륙에서 공식적인 의학적 치료법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경화치료의 원리 — 어떻게 혈관을 없애는가?

현재 이해되고 있는 경화치료의 작동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습니다.

경화제가 정맥 안으로 주사되면 우선 혈관 벽의 근육층이 수축하면서 혈관이 즉각적으로 좁아집니다. 이어서 경화제는 혈관 내벽(내피세포)을 손상시켜 염증 반응을 유도합니다. 이 염증 과정에서 혈관 세포벽 내의 **섬유아세포(fibroblast)**가 증식하고, 이 세포들이 혈관을 서서히 수축·수렴시켜 결국 혈관이 흉터 조직으로 대체됩니다. 이후 수 주에서 수개월에 걸쳐 몸이 이 폐쇄된 혈관 조직을 자연스럽게 흡수하면서 혈관이 눈에 보이지 않게 사라집니다.

경화제의 종류에 따라 작용 방식이 조금씩 다릅니다. STS나 포리도카놀(Polidocanol) 같은 계면활성제 계열의 경화제는 세포막의 지질 성분을 직접 파괴하는 방식으로 작용합니다. 포리도카놀은 특히 국소마취 성분도 있어 주사 시 통증이 적다는 장점이 있으며, Asclera, Varithena 등의 상품명으로 FDA 승인을 받아 사용됩니다.


폼(Foam) 경화치료의 등장 — 21세기의 혁신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경화치료는 또 한 번의 도약을 맞이합니다. **폼 경화치료(Foam Sclerotherapy)**의 등장입니다.

기존 액체 경화제는 혈관 안에서 혈액에 희석되어 효과가 반감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경화제를 기체(공기 또는 이산화탄소)와 혼합하여 미세 거품(foam) 형태로 만드는 방법이 개발되었습니다. **테사리(Tessari)**가 고안한 '3방향 꼭지(3-way tap)' 방식으로 폼을 만들어 주사하면, 폼이 혈액을 밀어내고 혈관 내벽에 직접 접촉하여 훨씬 강력하고 균일한 효과를 발휘합니다.

폼 경화치료는 대복재정맥(great saphenous vein)처럼 굵고 긴 혈관에도 적용 가능해, 기존에는 수술이 필요했던 경우에도 비수술적 치료가 가능해졌습니다. 2003년과 2006년 유럽 폼 경화치료 합의 회의에서는 숙련된 시술자라면 폼 경화치료로 대복재정맥을 포함한 굵은 혈관도 치료할 수 있다고 공식 선언했습니다.


초음파 유도 경화치료 — 눈으로 보면서 치료한다

1980년대 이중 초음파(duplex ultrasonography)의 발전도 경화치료의 정밀도를 크게 높였습니다. 나이트(Knight) 박사 등이 초음파를 경화치료에 적용하기 시작하면서, 의사들은 피부 안쪽의 혈관 구조를 실시간으로 보면서 정확한 위치에 경화제를 주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치료 성공률을 높이고 부작용을 줄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경화치료의 안전성 — 얼마나 믿을 수 있나?

경화치료는 FDA의 공식 승인을 받은 치료법으로, 수십 년간의 임상 데이터가 축적되어 있습니다. 전반적인 안전성은 높은 편이지만, 알아야 할 합병증과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드물게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으로는 혈전색전증(venous thromboembolism), 시각 장애, 알레르기 반응, 혈전성 정맥염(thrombophlebitis), 피부 괴사, 색소침착(피부가 갈색으로 변하는 현상) 등이 있습니다. 경화제가 혈관 밖으로 새어 나오면 주변 조직에 괴사와 흉터가 생길 수 있으며, 폼 경화치료의 경우 기포가 심장·폐·뇌로 이동할 수 있다는 보고도 있어 일부 학자들의 지속적인 연구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코크란 체계적 리뷰(Cochrane Collaboration)에서는 경화치료가 단기적으로는 수술에 비해 치료 성공률, 합병증률, 비용 면에서 우수하다고 결론지었지만, 5년 이상 장기 추적 시에는 수술이 더 나은 결과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재발의 문제와도 연관됩니다.

경화치료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절대적 안정이 필요한 환자, 심각한 전신 질환자, 경화제 알레르기 환자, 항암제인 타목시펜 복용자, 바늘 공포증이 있는 환자, 거동이 불가능한 환자 등은 경화치료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


마치며 — 350년 역사가 쌓아 올린 치료법

1682년 스위스의 한 의사가 혈관에 산을 주사하는 대담한 실험을 했을 때, 그 누가 이것이 현대 의학에서 하지정맥류의 '표준 치료법'이 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요? 경화치료는 독성 강한 초기 물질들에서 출발해 STS와 포리도카놀 같은 안전한 약물로, 단순 주사에서 초음파 유도 폼 경화치료로, 350년 이상의 시행착오와 발전을 통해 오늘의 모습에 이르렀습니다.

모든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법이 따로 있는 만큼, 경화치료가 적합한지 여부는 반드시 혈관외과 전문의와 충분한 상담을 통해 결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긴 역사와 과학적 원리를 이해하고 치료에 임한다면, 훨씬 더 신뢰감을 가지고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 자료: Wikipedia - Sclerotherapy, Sodium Tetradecyl Sulfate, Polidocanol / Cochrane Collaboration Reviews on Sclerotherapy

서동주 대표원장

서동주 대표원장

심장혈관흉부외과 전문의 · 다리핏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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