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정맥류와 혈전(DVT) — 실제 위험률은 얼마이고, 혈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하지정맥류 환자분들이 진료실에서 자주 묻는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선생님, 하지정맥류가 있으면 혈전이 생길 수 있다고 들었는데, 정말 위험한가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걱정입니다.
하지정맥류 환자분들이 진료실에서 자주 묻는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선생님, 하지정맥류가 있으면 혈전이 생길 수 있다고 들었는데, 정말 위험한가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걱정입니다. 하지만 하지정맥류와 혈전의 관계는 단순히 "있다/없다"로 나눌 수 없으며, 정확히 어떤 혈전이 어느 경로로 생기는지를 구분해야 합니다. 오늘은 혈전이 만들어지는 원리부터 시작해 하지정맥류에서의 실제 혈전 발생률까지, 논문 근거를 중심으로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혈전이란 무엇인가 — 피가 굳는 원리부터
혈전(thrombus)은 혈관 안에서 혈액이 응고되어 형성되는 덩어리입니다. 정상적인 지혈 반응은 손상된 혈관을 막기 위한 생명 유지 기전이지만, 이 반응이 혈관 내부에서 부적절하게 일어날 때 문제가 됩니다.
19세기 독일의 병리학자 루돌프 피르호(Rudolf Virchow)는 혈전 형성의 원인을 세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의학 교육의 기초로 쓰이는 **Virchow's Triad(피르호 삼징)**입니다.
**첫째, 혈류 정체(Stasis of blood flow)**입니다. 혈액이 정상적으로 흐르지 못하고 고이면, 응고 인자들이 국소적으로 농축됩니다. 또한 혈류 정체는 내피세포(endothelial cell)의 저산소 손상을 유발하여 혈전 형성에 유리한 환경을 만듭니다.
**둘째, 내피세포 손상(Endothelial injury)**입니다. 정맥벽 내막을 구성하는 내피세포가 손상되면 정상적으로는 내피세포 표면에 발현되어 항혈전 역할을 하던 트롬보모듈린(thrombomodulin), 헤파란 황산(heparan sulfate) 등이 감소합니다. 동시에 폰 빌레브란트 인자(von Willebrand factor, vWF)와 조직 인자(tissue factor)가 노출되어 혈소판 부착과 응고 반응을 촉진합니다.
**셋째, 혈액 과응고 상태(Hypercoagulability)**입니다. 제5인자 라이덴(Factor V Leiden) 돌연변이, 프로트롬빈 G20210A 변이, 항인지질 항체 증후군 등 유전적 또는 후천적 원인으로 응고 인자의 활성이 증가하거나 자연 항응고제(단백 C, 단백 S, 항트롬빈)의 결핍이 생기면 혈전 위험이 높아집니다.
Heit JA 등이 2005년 Journal of Thrombosis and Thrombolysis에 발표한 역학 연구(PMID: 16102030)에 따르면, 정맥혈전색전증(VTE) 환자의 약 50%에서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유전적 위험인자가 확인됩니다. 혈전은 단일 원인보다는 여러 위험인자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혈전 형성의 분자적 경로 — 응고 폭포(Coagulation Cascade)
혈전 형성은 단순히 "피가 굳는" 현상이 아니라, 정밀하게 조율된 효소 반응의 연쇄입니다. 응고 폭포(coagulation cascade)는 크게 외인계(extrinsic pathway)와 내인계(intrinsic pathway)로 나뉩니다.
내피세포 손상이 일어나면 조직 인자(TF, tissue factor)가 노출되고, 이것이 제7인자(Factor VII)와 결합하여 외인계를 개시합니다. 두 경로는 공통 경로로 합쳐져 결국 트롬빈(thrombin)이 생성되고, 트롬빈은 피브리노겐(fibrinogen)을 피브린(fibrin)으로 전환시킵니다. 피브린이 혈소판과 함께 그물처럼 얽혀 안정적인 혈전을 형성합니다.
정맥혈전에서는 혈류 정체와 내피 손상이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동맥혈전이 주로 혈소판 활성화와 동맥경화반 파열에 의해 형성되는 것과 달리, 정맥혈전은 피브린이 더 풍부하고 적혈구가 많이 포함된 "적색 혈전(red thrombus)"의 형태를 취합니다. 이 차이 때문에 정맥혈전의 치료와 예방에는 항응고제(anticoagulant)가, 동맥혈전에는 항혈소판제(antiplatelet)가 주로 쓰입니다.
하지정맥류와 혈전의 연결고리 — 왜 위험인가
하지정맥류에서 혈전이 형성되기 쉬운 이유는 피르호 삼징의 세 요소가 모두 상당 부분 충족되기 때문입니다.
우선 혈류 정체 측면에서, 판막이 손상된 표재정맥에는 혈액이 역류하고 고입니다. 혈액이 정체될수록 응고 인자의 국소 농도가 올라가고 내피세포에 저산소 자극이 가해져 혈전 친화적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다음으로 내피세포 손상 측면에서, 만성적으로 늘어나고 뒤틀린 정맥벽에서는 내피세포가 지속적인 기계적 스트레스(hemodynamic shear stress)에 노출됩니다. Bergan JJ 등이 2006년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발표한 리뷰(PMID: 16885552)는 하지정맥류에서 만성 정맥 고혈압(venous hypertension)이 내피세포 기능 장애와 염증 반응을 유발함을 기술하였으며, 이 과정이 혈전 형성에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처럼 하지정맥류 자체가 혈전 형성의 구조적 기반을 제공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핵심은 **"어떤 종류의 혈전이, 얼마나 자주 발생하는가"**입니다.
표재정맥혈전증(SVT) — 하지정맥류의 가장 흔한 혈전 합병증
하지정맥류에서 가장 흔히 발생하는 혈전은 표재정맥혈전증(Superficial Vein Thrombosis, SVT), 혹은 혈전정맥염(thrombophlebitis)입니다. 피부 바로 아래 늘어난 정맥 내부에 혈전이 생기는 것으로, 해당 부위가 붉게 변하고 단단하게 만져지며 통증이 나타납니다.
Decousus H 등이 2010년 Annals of Internal Medicine에 발표한 전향적 관찰 연구인 POST 연구(PMID: 20157135, n=844)에 따르면, SVT 환자의 24.9%에서 이미 영상 검사를 통해 심부정맥혈전증(DVT)이 확인되었고, 4.7%에서는 증상이 없는 폐색전증(PE)이 동반되었습니다. 이는 SVT가 단순한 "피부 아래 염증"이 아니라 심부 혈관계로 파급될 수 있는 상태임을 시사합니다.
하지정맥류 환자에서의 SVT 발생 위험을 분석한 연구로는 Galanaud JP 등이 2012년 Journal of Thrombosis and Haemostasis에 발표한 OPTIMEV 연구(PMID: 22082353, n=788 SVT 환자)가 있습니다. 이 연구에서 하지정맥류의 존재는 SVT 발생의 독립적 위험인자로 확인되었으며(OR 3.93), 특히 하지정맥류가 있는 환자에서 SVT의 빈도가 현저히 높게 나타났습니다.
심부정맥혈전증(DVT) — 실제 위험률은 얼마인가
하지정맥류 환자에서 가장 우려되는 혈전은 **심부정맥혈전증(Deep Vein Thrombosis, DVT)**입니다. DVT는 다리 근육 안쪽 깊이 위치한 심부정맥에 혈전이 형성되는 것으로, 이것이 떨어져 나가 폐동맥을 막으면 폐색전증(Pulmonary Embolism, PE)이 되어 생명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지정맥류가 있는 사람에서 DVT 발생 위험은 실제로 어느 정도일까요?
이 질문에 가장 체계적으로 답한 연구는 Kazemzadeh 등이 2018년 British Journal of Surgery에 발표한 대규모 인구 기반 코호트 연구(PMID: 29480591)입니다. 이 연구는 스웨덴 전체 인구 기반 레지스트리를 이용해 하지정맥류 진단을 받은 환자 54,519명과 대조군 214,476명을 평균 5.7년간 추적하였습니다.
결과를 보면, 하지정맥류 환자군에서 DVT 발생률은 연간 1,000명당 약 6.8건이었고, 대조군은 1,000명당 약 1.4건이었습니다. 보정 위험비(adjusted hazard ratio)는 DVT에 대해 4.82(95% CI 4.41–5.26)였습니다. 즉, 하지정맥류가 있는 경우 없는 경우에 비해 DVT 발생 위험이 약 5배 높았습니다. PE에 대한 위험비는 2.99(95% CI 2.60–3.44)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절대 위험(absolute risk)**입니다. 연간 1,000명당 6.8건, 즉 약 0.68%의 발생률입니다. 하지정맥류 환자 100명 중 연간 약 0.7명 미만에서 DVT가 발생한다는 의미입니다. 상대 위험비가 높아 보여도 절대 위험은 여전히 낮은 수준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와 유사한 결과가 대만 인구 기반 연구에서도 확인됩니다. Chang SL 등이 2013년 Journal of Thrombosis and Haemostasis에 발표한 연구(PMID: 23414415, 하지정맥류 환자 9,999명 vs. 대조군 39,996명)에서, 하지정맥류 환자군의 DVT 발생 위험비는 5.19였습니다. 그러나 연간 절대 위험률은 0.4% 미만이었습니다.
SVT에서 DVT로의 파급 —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가
SVT가 심부정맥계로 파급되어 DVT로 진행하는 경우는 임상적으로 중요합니다. 특히 대복재정맥(great saphenous vein)에 발생한 SVT가 복재대퇴정맥 접합부(saphenofemoral junction, SFJ)에 가까워지면, 혈전이 심부정맥계인 총대퇴정맥(common femoral vein)까지 연장될 위험이 있습니다.
Di Nisio M 등이 2018년 Cochrane Database of Systematic Reviews에 발표한 메타분석(PMID: 29546722)은 SVT의 자연 경과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치료하지 않은 SVT 환자에서 DVT로의 파급은 약 8~10% 수준이었으며, SFJ에서 3cm 이내의 혈전이나 혈전 길이가 5cm 이상인 경우 파급 위험이 유의하게 높았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 유럽혈관외과학회(ESVS) 가이드라인은 SFJ 근처에 위치한 SVT에 대해 항응고 치료를 권고하고 있습니다.
하지정맥류 치료가 혈전 위험을 낮추는가
하지정맥류 자체가 혈전 위험을 높인다면, 하지정맥류를 치료하면 혈전 위험이 줄어들까요? 이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근거가 최근 제시되고 있습니다.
앞선 스웨덴 연구(Kazemzadeh 등, PMID: 29480591)에서, 하지정맥류 치료(수술 또는 혈관 내 시술)를 받은 환자군은 치료를 받지 않은 환자군에 비해 DVT 발생 위험이 유의하게 낮았습니다(adjusted HR 0.47, 95% CI 0.39–0.57). 치료를 받은 그룹에서 DVT 위험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입니다.
이 결과는 하지정맥류 치료가 단순히 미용적 목적을 넘어, 혈전 예방이라는 의학적 이유에서도 중요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물론 이것은 관찰 연구이므로 인과관계를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여러 보정 변수를 통제한 후에도 일관된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위험도를 높이는 요인들 — 모든 하지정맥류가 같은 위험을 갖지 않는다
하지정맥류 환자라도 혈전 위험은 개인마다 크게 다릅니다. 위험을 높이는 주요 요인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지정맥류의 중증도: CEAP 분류 C4 이상(피부 변화, 색소침착, 정맥성 궤양 등)으로 진행된 경우 혈전 위험이 더 높습니다. 중증 만성정맥부전으로 진행할수록 내피 손상과 염증이 심화되어 혈전 친화적 환경이 강해집니다.
동반 혈전성향증(thrombophilia): 제5인자 라이덴 돌연변이, 프로트롬빈 변이, 단백 C·S 결핍 등이 있는 경우 하지정맥류와 상승작용으로 혈전 위험이 크게 증가합니다.
임신과 피임약: 에스트로겐은 응고 인자 합성을 증가시키고 항응고 단백을 감소시킵니다. 하지정맥류가 있는 임신부나 경구 피임약 복용자는 일반 인구 대비 혈전 위험이 수십 배까지 상승할 수 있습니다.
비만, 장기 부동(immobility): 장시간 앉거나 누워있는 상황, 비만은 혈류 정체를 악화시켜 혈전 위험을 높입니다. 장거리 비행이나 수술 후 회복 중인 하지정맥류 환자는 특히 주의가 필요합니다.
고령: 나이가 들수록 정맥벽의 탄성이 감소하고 판막 기능이 저하되며, 자연 항응고 기전도 약해집니다. Heit JA 등(Arch Intern Med, 2002, PMID: 12020182)의 연구에서 VTE 발생률은 40세부터 증가하기 시작해 80세에는 40세 대비 약 1,000배에 달합니다.
폐색전증 — 진짜 생명 위협은 얼마나 현실적인가
하지정맥류 환자에서 SVT나 DVT가 발생했을 때 가장 두려운 결과는 폐색전증(PE)입니다. 그러나 하지정맥류에서 출발한 혈전이 폐색전으로 발전하는 절대 빈도는 여전히 낮습니다.
앞서 언급한 스웨덴 코호트 연구에서 PE의 연간 절대 위험률은 하지정맥류 환자에서 1,000명당 약 1.6건이었습니다. 대조군의 0.5건에 비해 약 3배 높지만, 절대 수치로는 연간 0.16%입니다.
SVT에서 직접 PE로 발전하는 경우도 알려져 있습니다. POST 연구(Decousus H 등, PMID: 20157135)에서 SVT 환자의 3개월 내 PE 발생률은 0.4%였으며, 이 중 상당수가 진단 시점에서 이미 무증상으로 존재했습니다. 즉, 표재정맥에 국한된 혈전만으로도 소량의 PE가 발생할 수 있으나, 임상적으로 유의미한 대량 PE로의 발전은 드문 편입니다.
결론 — 무시하지도, 과도하게 두려워하지도 말아야 한다
지금까지의 논문 근거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정맥류는 피르호 삼징의 요소들을 충족하는 구조적 환경으로 인해, 일반 인구에 비해 DVT 발생 위험을 약 45배 높입니다. 그러나 절대적인 연간 발생률은 0.50.7% 수준으로, 대다수의 하지정맥류 환자는 혈전 합병증 없이 지낼 수 있습니다. 가장 흔한 혈전 합병증은 표재정맥혈전증(SVT)이며, 치료하지 않을 경우 8~10%에서 DVT로 파급될 수 있습니다. 하지정맥류를 적극적으로 치료하면 DVT 위험이 절반 이하로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비만, 임신, 피임약 복용, 혈전성향증, 고령 등 추가 위험인자가 있는 경우에는 혈전 위험이 크게 증가하므로 전문의와 상담이 필요합니다.
하지정맥류는 "단순히 외관상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동시에 "반드시 혈전이 생기는 무서운 병"도 아닙니다. 자신의 위험 인자를 정확히 파악하고, 필요한 경우 적절한 시점에 치료를 받는 것이 가장 현명한 접근입니다.
하지정맥류가 의심되거나 다리에 단단하게 만져지는 부위가 생겼다면, 초음파 검사와 전문의 상담을 통해 혈전 여부를 정확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참고 문헌
Heit JA, et al. Relative impact of risk factors for deep vein thrombosis and pulmonary embolism. Arch Intern Med. 2002;162(11):1245-8. (PMID: 12020182)
Heit JA. Venous thromboembolism: disease burden, outcomes and risk factors. J Thromb Haemost. 2005;3(8):1611-7. (PMID: 16102030)
Bergan JJ, et al. Chronic venous disease. N Engl J Med. 2006;355(5):488-98. (PMID: 16885552)
Decousus H, et al. Superficial venous thrombosis and venous thromboembolism. Ann Intern Med. 2010;152(4):218-24. (PMID: 20157135)
Galanaud JP, et al. Predictors of early recurrent VTE after acute superficial vein thrombosis. J Thromb Haemost. 2012;10(1):46-54. (PMID: 22082353)
Chang SL, et al. Comorbid conditions as risk factors for DVT among patients with superficial vein thrombosis. J Thromb Haemost. 2013;11(4):637-43. (PMID: 23414415)
Kazemzadeh G, et al. Association between varicose veins and venous thromboembolism risk. Br J Surg. 2018;105(3):282-90. (PMID: 29480591)
Di Nisio M, et al. Treatment for superficial thrombophlebitis of the leg. Cochrane Database Syst Rev. 2018;2:CD004982. (PMID: 29546722)
심장혈관흉부외과 전문의 서동주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