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박스타킹을 왜 신어야 하나요? — 혈액순환이 안 될 것 같은데요
핵심 참고 논문 Rabe E, Partsch H, et al. Phlebology. 2018;33(3):163-184. PMID: 28549402 | Charles T, et al.
핵심 참고 논문 Rabe E, Partsch H, et al. Phlebology. 2018;33(3):163-184. PMID: 28549402 | Charles T, et al. Adv Ther. 2011;28(3):227-237. PMID: 21331557 | Rabe E, Partsch H, et al. Phlebology. 2020;35(7):447-460. PMID: 32122269
들어가며: "압박하면 오히려 혈액순환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진료실에서 압박스타킹을 처방하면 꽤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압박을 하면 오히려 혈관이 눌려서 혈액순환이 더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이 의문은 매우 합리적이다. 꽉 조이는 것이 순환에 방해가 될 것 같다는 직관은 틀리지 않다. 그런데 압박스타킹이 실제로는 혈액순환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촉진한다는 것이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되어 있다.
이 글에서는 그 이유를 생리학적 원리부터 임상 근거까지 단계적으로 설명한다.
1. 먼저 알아야 할 것 — 왜 다리 정맥은 '역류'하는가
심장은 펌프처럼 혈액을 동맥을 통해 온몸으로 내보낸다. 혈액은 다리 끝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심장으로 올라와야 한다. 이때 중력을 거슬러 아래에서 위로 피를 올려보내는 일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정맥이다.
정맥에는 역류를 막는 **판막(valve)**이 있다. 판막이 제대로 닫히면 혈액이 아래로 역류하지 않고 심장 쪽으로만 흐른다. 그런데 하지정맥류가 생기면 이 판막이 망가져 혈액이 역류하고, 정맥 내 압력이 지속적으로 높아진 상태(정맥 고혈압, venous hypertension)가 된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증상이 생긴다.
- 혈관이 늘어나고 구불구불하게 튀어나온다
- 다리가 무겁고 쑤신다
- 저녁에 발목이 붓는다
- 장기화되면 피부 착색, 궤양으로 진행된다
2. 압박스타킹의 핵심 원리 — 관의 단면적과 유속의 관계
여기서 물리학의 기본 원리가 등장한다. 혈관을 통한 혈류는 **연속 방정식(continuity equation)**을 따른다.
유량(Flow) = 단면적(A) × 유속(v)
즉, 같은 양의 혈액이 흐를 때 관이 좁아지면(단면적 감소) → 유속은 빨라진다.
압박스타킹은 정맥의 단면적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늘어나 있던 정맥이 압박에 의해 좁아지면, 혈액은 더 빠른 속도로 심장 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압박을 했는데 혈류가 더 잘 된다"**는 역설적 현상의 핵심 메커니즘이다.
Charles T 등(2011)이 발표한 무작위 대조 연구에서, 압박스타킹 착용 시 슬와정맥(popliteal vein)의 최고 혈류 속도가 24% 증가했으며, 평균 혈류 속도와 총 혈류량 모두 유의하게 높아진 것이 도플러 초음파로 확인됐다. (Charles T, et al. Adv Ther. 2011;28(3):227-237. PMID: 21331557)
3. 동맥 혈류는 어떻게 되나 — "동맥이 눌리는 거 아닌가요?"
또 하나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압박을 하면 동맥도 눌리는 것 아닌가요?"
결론부터 말하면, 의료용 압박스타킹은 동맥을 압박하지 않는다.
이유는 구조적 차이에 있다. 동맥은 두껍고 탄력 있는 근육층으로 이루어진 고압 시스템이다. 반면 정맥은 벽이 얇고 탄성이 낮은 저압 시스템이다. 압박스타킹이 제공하는 외부 압력(일반적으로 2040 mmHg)은 동맥압(수축기 100140 mmHg)에 비해 훨씬 낮기 때문에, 동맥은 압박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반면 정맥 내 압력은 이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외부 압박에 의해 관경이 좁아지는 효과가 나타난다. 압박스타킹은 정맥만 선택적으로 좁힌다고 볼 수 있다.
단, 말초동맥폐쇄질환(PAOD)이 있는 경우에는 동맥 혈류가 이미 감소해 있기 때문에 압박스타킹이 금기이거나 주의가 필요하다. 이는 Rabe E, Partsch H 등 국제 전문가 그룹이 발표한 의료 압박 요법 금기 및 위험에 관한 국제 합의 성명(2020)에서도 명시하고 있다. (Rabe E, Partsch H, et al. Phlebology. 2020;35(7):447-460. PMID: 32122269)
4. 종아리 근육 펌프를 강화한다
압박스타킹의 또 다른 작용 기전은 종아리 근육 펌프(calf muscle pump)의 효율 향상이다.
종아리 근육이 수축할 때 주변 정맥을 압박하여 혈액을 위쪽으로 밀어올리는 작용을 '근육 펌프'라고 한다. 이 펌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려면, 정맥 내 혈액이 역류하지 않고 심장 쪽으로만 올라가야 한다.
하지정맥류가 있으면 판막 기능 저하로 인해 근육 펌프가 수축해도 혈액 일부가 역류한다. 압박스타킹은 이 역류를 물리적으로 억제하고, 근육 수축 시 정맥을 더 효율적으로 짜낼 수 있게 도와준다. 결과적으로 종아리 근육 펌프의 효율이 높아지고, 정맥 귀환(venous return)이 개선된다.
5. 단계적 압박 — 아래가 더 세고, 위로 갈수록 약해진다
의료용 압박스타킹은 발목 부위가 가장 압박이 강하고, 위로 올라갈수록 점차 압력이 줄어드는 '단계적 압박(graduated compression)'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이 설계가 중요한 이유는 혈액이 발목 → 종아리 → 허벅지 → 심장 방향으로 흐르도록 압력 구배(pressure gradient)를 만들기 때문이다. 발목에서 높은 압력을 주고 위로 갈수록 낮아지면, 혈액은 자연스럽게 낮은 압력 방향(심장)으로 밀려 올라가게 된다.
Rabe E, Partsch H 등이 발표한 근거 기반 국제 합의 성명(2018)에 따르면, 이러한 단계적 압박스타킹은 정맥 부종 예방 및 치료, 정맥 궤양 예방 및 치료에서 Grade 1A~1B 수준의 강력한 근거를 가진다. (Rabe E, Partsch H, et al. Phlebology. 2018;33(3):163-184. PMID: 28549402)
6. 압박스타킹으로 기대할 수 있는 효과 요약
- 정맥 혈류 속도 증가: 늘어난 정맥을 좁혀서 혈액이 더 빠르게 심장으로 이동
- 부종 감소: 간질액의 혈관 내 재흡수 촉진, 모세혈관 여과 감소
- 정맥 고혈압 완화: 혈관 내 압력 저하로 무거움, 통증, 저림 증상 호전
- DVT(심부정맥혈전증) 예방: 장시간 이동 시 혈류 정체 방지
- 정맥 궤양 치료·재발 방지: 가장 강력한 근거를 가진 적응증 중 하나
- 수술 후 회복 지원: 정맥류 시술 직후 혈관 폐쇄 유지 및 부종 억제
7. 올바르게 사용해야 효과가 있다
압박스타킹은 처방된 압박 등급(mmHg)이 중요하며, 잘못된 사이즈나 착용 방법으로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의사와 상담이 반드시 필요하다.
- 말초동맥질환이 있거나 발이 차고 창백한 경우
- 당뇨병성 신경병증으로 발 감각이 저하된 경우
- 심부전이나 폐부종이 있는 경우
- 피부 염증이나 상처가 심한 경우
이런 경우에는 압박 강도를 조절하거나 착용을 금해야 할 수 있다.
마치며 — 압박은 막는 것이 아니라 '돕는' 것이다
압박스타킹은 혈관을 막는 도구가 아니다. 늘어지고 역류하는 정맥을 정상에 가까운 굵기로 유지해줌으로써, 혈액이 중력을 거슬러 심장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을 물리적으로 보조하는 장치다.
정맥 질환 치료에서 가장 비침습적이면서도 근거가 탄탄한 치료법 중 하나다. 처방받은 등급의 압박스타킹을 꾸준히 착용하는 것이 증상 개선의 첫걸음이다.
하지정맥류 증상이 있다면 초음파 검사를 통해 정확한 진단을 받고, 본인에게 맞는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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